제주, 관광의 섬에서 ‘침체의 섬’으로: 체감 경기 둔화의 진짜 이유
2일 전, 제주도를 다녀왔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하늘은 맑았으며, 바람은 제주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예전 제주에서 느꼈던 활기와 온기가 곳곳에서 옅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리는 순간부터, 유명 관광지를 지나며, 식당과 카페에 들를 때마다 공통적으로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요즘 정말 손님이 줄었어요.” “작년이랑 비교하면 체감이 많이 달라요.” “주말인데도 예전 같지 않네요.”
거리는 한산했고, 가게 문을 닫은 상점도 눈에 띄었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단순한 계절적 요인으로만 보기에는 체감되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관광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에서, ‘관광지답지 않은 조용함’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그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 경제, 지금 정말 괜찮은 걸까?”
여행객의 시선이 아닌,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주를 다시 보니, 이 조용함은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신호는 관광, 소비, 부동산, 자영업이라는 제주 경제의 핵심 축들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① 기반 산업 없이 관광·서비스업에 과도하게 의존한 제주 경제 구조
제주 경제는 오랫동안 관광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관광객이 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듯 보이고, 관광객이 줄면 곧바로 침체를 체감하는 구조다. 이 단순한 공식은 제주 경제의 강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다. 관광 산업은 분명 중요한 성장 동력이지만, 그것만으로 지역 경제 전체를 떠받치기에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문제는 제주에 관광 외에 경제를 지탱할 만한 기반 산업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조업, 기술 산업, 연구개발 산업, 고부가 서비스 산업 등은 여전히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제주는 외부 소비자, 즉 관광객의 지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구조는 평상시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사건, 경기 침체, 감염병, 항공 요인, 정치적 불안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제주 경제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더 크게 흔들린다. 관광이라는 단일 축이 무너지면, 동시에 지역 소비·고용·자영업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관광 산업은 ‘보조 축’으로는 훌륭하지만, ‘단독 축’으로는 위험하다. 제주 경제가 반복적으로 침체를 겪는 이유는, 관광이 약해서가 아니라 관광 외 산업이 충분히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 경제의 문제는 관광 산업의 한계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편중에 있다.
② 관광지 특유의 상술이 만든 내국인 인식 악화
제주 관광에 대한 내국인들의 인식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한때 제주 여행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였지만, 최근에는 “비싸다”, “불친절하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개인 경험이 아니라, 누적된 집단 기억에 가깝다.
관광지 특유의 상술은 단기적으로는 매출을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잃는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낮아지고, 서비스 품질이 일정하지 않으며, 관광객을 ‘고객’이 아닌 ‘소비 대상’으로 대하는 태도가 반복될수록 관광지는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관광 산업은 결국 재방문이 핵심이다. 그러나 제주를 한 번 다녀온 뒤 “다시는 안 가도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관광객 수는 유지되더라도 관광의 질은 빠르게 하락한다. 그 결과, 체류 기간은 짧아지고, 소비는 줄어들며, 관광객은 다른 해외나 국내 지역으로 이동한다.
제주의 문제는 관광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의 신뢰를 점점 잃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은 여전히 오지만, 감동은 줄어들고, 기대는 낮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제주 관광은 ‘필수 여행지’가 아니라 ‘한 번 가본 곳’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③ 관광 외 산업에서 일하는 젊은 세대가 보이지 않는 제주
제주를 걸어 다니다 보면 관광 종사자는 쉽게 보인다. 그러나 관광 외 산업에서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제주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위험한 문제다.
청년이 머무르지 않는 지역은 미래가 없다. 제주에서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관광, 숙박, 외식, 단기 서비스업에 집중돼 있다. 연구, 기술, 기획, 금융, IT, 콘텐츠 산업과 같은 분야는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다.
이 구조는 청년들에게 두 가지 선택만 남긴다. 제주를 떠나거나, 제주에 남아도 미래를 미루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제주는 인구는 유지해도 경제적 활력은 점점 약해지는 구조로 흘러간다.
젊은 인구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소비자이며 혁신의 주체이고, 지역 경제의 미래다. 이들이 머무르지 못하는 제주 경제는 결국 고령화, 소비 위축, 산업 정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착하는 청년이 줄어드는 것이다.
④ 행정의 소극적인 투자유치와 산업 설계 부재
제주는 자연, 브랜드, 입지, 환경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 대규모 신산업 기업이나 장기적 투자가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이유는 명확하다. 행정의 투자유치 전략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단순히 땅과 환경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행정의 속도, 유연성, 예측 가능성, 규제 환경, 협력 의지를 함께 본다. 제주 행정은 여전히 ‘관리 중심 행정’에 머물러 있고, ‘성장 설계자’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 사업, 단기 지원, 단기 예산은 많지만, 10년 후 제주 산업 지도를 그리는 로드맵은 체감되지 않는다. 투자자는 미래를 보고 오는데, 행정은 현재만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투자가 없으면 기업이 없고,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가 없다. 그리고 일자리가 없으면 청년은 떠난다. 제주 경제 침체의 고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⑤ 과거에 머문 채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지역산업정책
제주의 산업 정책은 여전히 과거 성공 경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관광, 1차 산업, 지역 특산물 중심 정책은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정책이 ‘유지’에 머물고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환경은 이미 완전히 달라졌다. 기술, 산업, 노동, 소비, 인구 구조 모두 변화했지만, 정책은 여전히 “관광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질문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정작 “관광 이후의 제주”를 준비하는 정책은 부족하다.
지역 산업 정책은 단순히 예산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미래 산업을 준비하기보다, 현재 산업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에서는 제주 경제가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 지금의 침체는 어쩌면 경기 문제가 아니라, 정책 방향이 만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 출처: 주간조선 |
맺음말
제주를 떠나는 날,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창밖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여행을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그 풍경이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섬이 가진 자연의 가치는 여전히 충분했지만, 그 자연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제는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제주가 여전히 ‘힐링의 섬’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혀 보면, 그 이면에는 관광객 감소, 소비 위축, 자영업자의 고통, 그리고 부동산과 건설 경기 침체라는 현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제주 경제의 불황은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되는 삶의 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한 지역 경제가 보내는 조용한 신호를 직접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신호는 분명했다. 지금의 제주 경제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와 새로운 방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는 여전히 가능성이 많은 섬이다. 자연, 문화, 브랜드, 사람까지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다. 다만 이제는 ‘관광객 수’만으로 제주를 평가하던 시대를 넘어,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깊이 소비하며,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제주를 사랑하는 한 여행자로서, 그리고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이 아름다운 섬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조금 더 밝은 표정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그날을 기대하며, 이번 제주 여행을 조용히 마음속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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